한 기업의 조직문화를 알고 싶으면 회의에 참석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직문화 영역에서 '회의'는 언제나 핵심적인 주제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조성된 원격근무 환경과 성숙해가고 있는 디지털 업무 환경에 맞춰 우리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회의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내 통신사에서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김모 과장, 그동안 개발한 신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유관 부서,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의 일정을 알기 어려워 가능한 일정을 일일이 이메일로 회신 받고 조율한다. 회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로부터 며칠간 이메일로 자료를 취합해 공유했다. 하지만 회의 시작 전 내용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와 업데이트 버전을 만들어 다시 전체 공유 메일을 보낸다. 또 업무 협의를 위한 외부 미팅과 문제 해결을 위한 개발자 회의가 잦아 이동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렇듯 잦은 회의와 회의 준비 업무에 지쳐가는 김 과장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듯 익숙해져 있는 오래된 회의 문화에 서서히 변화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의 업무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직장인들에게 재택근무는 프리랜서나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이른바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년을 넘어선 지금, 재택근무는 더는 특별한 모습이 아닌 하나의 일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 쟁점과 평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국내외에서 재택근무가 추세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19 이후 회의 문화의 격변
재택근무로 인해 구성원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틈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회의, 보고, 출장, 교육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진행하는 것이 당연했던 업무들을 비대면으로 처리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들은 발 빠르게 디지털 협업 솔루션을 도입해 나갔다. 온라인 협업과 화상회의가 가능한 대표적인 솔루션인 Microsoft Teams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이전에 비해 일일 사용자 수가 약 4배나 증가했을 정도다. 특히, 원격으로 협업하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인 화상회의는 우리가 평소 업무 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가 됐다. 많은 사람이 화상회의의 효율성을 경험한 뒤로 간단한 회의는 먼저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업무 환경 변화에 발맞춰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면, 코로나19 이후에 가장 많은 변화가 필요한 업무는 아마도 '회의'일 것이다.
회의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서 마치 윤활유와 같다. 코로나19 이후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며 업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동안, 과연 우리가 회의하는 방식도 그에 맞게 변화해왔을까? 먼저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서 회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자. 보통 한 조직의 일하는 방식은 의사결정, 업무 실행 및 협업, 의사소통이라는 3요소로 구성된다. 회의의 사전적 의미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어떤 주제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업무 실행 및 협업, 의사소통 등 모든 일에는 최소 두 명 이상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회의는 이해관계자 간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회의는 모든 영역에서 각 업무들이 원활하게 처리되는 데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회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직은 그 어떤 일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회의는 참석자 규모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회의라고 하면 단일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회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이나 제도 변화를 시도할 때도 고정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1:1 면접, 팀 주간회의, 전사 웨비나(Webinar), 임원 보고, TFT 프로젝트 회의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회의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당연히 회의의 유형마다 구성원들이 겪는 경험은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을 전제로 할 때 우리는 조직의 실제 회의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구성원의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회의 문화도 바뀌지 않는다. 회의가 가진 중요성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회의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실제 회의 문화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왜 그럴까?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17년 발간한 '국내 기업의 회의 문화 실태와 개선 해법'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사 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회사 차원의 회의문화 개선 활동이 있었다는 답변이 45%인 것에 비해 개선 활동 후 크게 개선됐다는 답변은 4.3%에 불과했다.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는 리더의 의식 부족, 상명하복 조직문화, 조직원들의 관성 순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이유처럼 보이지만, 이는 결국 리더십을 포함한 구성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나 제도라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리더와 구성원 간에는 조직문화를 바라보는 데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중견기업, 대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방식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해보면 이러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리더십의 의사결정을 통해 효율적인 회의 및 보고를 위해 필요한 디지털 솔루션과 규정을 도입했지만, 구성원들은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사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화상회의 도구와 온라인 보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의사결정권자를 위해 보고서를 출력해 대면으로 보고해야만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온라인 보고 체계를 이용하지 않거나 최종 승인을 위한 도구로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게 되어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리더들은 기술이나 제도를 마련한 것만으로 일하는 방식이 개선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변화가 더디고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회바회바' 프로젝트로 효율성 디자인
그렇다면, 변화하는 업무 환경에 맞춰 새로운 회의 문화를 성공적으로 조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의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회의와 관련된 구성원들의 경험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회의의 진행 단계별 목적에 맞는 '행동'을 디자인한다. 여기서 회의의 진행 단계란 회의 진행 전(Before the Meeting), 회의 중(During the Meeting), 회의 진행 후(After the Meeting)를 말한다. 행동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진행 단계별로 수행해야 하는 바람직한 행동을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즉, 회의 전에 논의 자료는 어떻게 준비하고, 참석자 초대 및 일정 조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 중 회의록은 어떻게 작성할 것이며, 회의 종료 후 관련 자료와 이력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정의해두는 것이다.
동아쏘시오그룹에서 추진했던 '회의 문화가 바뀌면 회사가 바뀝니다'(이하 회바회바) 프로젝트는 회의 진행 단계별로 규칙을 정해 회의 문화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사례다. 사전 회의 준비를 위한 준비 규칙 4가지, 회의 진행 규칙 4가지, 회의 후실행을 위한 결론 규칙 2가지 등 총 10가 규칙을 회의 주관자와 참석자로 나눠 각각 2가지 유형으로 구성했다. 기존의 회의 문화 혁신 사례들을 보면 주로 회의 중 전사 구성원들이 따라야 할 규칙을 지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동아쏘시오그룹의 사례는 회의 주관자와 참석자를 구분하고 회의 단계별로 지침을 구분해 놓아 구성원들이 상황별로 규칙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회의 전 과정에서의 변화를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디지털 조직문화 차원에서 회의문화를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현재 구성원들이 회의의 전/중/후 단계에서 무슨 활동들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로 인한 불편사항(Pain Points)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때, 조직 내에서 다양하게 수행되는 회의 유형별로 이를 파악해봄으로써 활동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이상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 개선하거나 추가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들을 설계한다면 변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과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둘째, 도구와 환경을 디자인한다. 이상적인 회의를 위한 행동들을 실제로 수행하는 데 구성원들에게 어떤 역량(Capabilities)이 필요한지 살펴보고 실제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조직문화 측면에서의 역량은 디지털 협업 솔루션, 장비, 회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회의를 위한 디지털 협업 솔루션은 단순히 화상회의 기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회의 전 일정을 조율하고, 회의록을 작성하고, 자료와 기록을 보관 및 공유하는 등 회의의 전/중/후 활동들이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동형 스크린, 고화질 카메라 및 음향 장비, 회의실 통합 제어 시스템 등 적절한 장비와 회의 공간은 비대면 업무 환경에 맞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효과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
구체적인 경험 시나리오가 구성원들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바람직한 '행동'의 설계와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와 환경'의 제공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더해지면 구성원들을 위한 새로운 경험 시나리오를 도추할 수 있다.
[출처] 포브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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